이제마는 욕심을 따르다 덕을 놓친 사람의 모습을 네 가지로 불렀습니다. 비루한 사람(鄙人), 박한 사람(薄人), 탐하는 사람(貪人), 나약한 사람(懦人)입니다. 합쳐서 비박탐나(鄙薄貪懦)라고 합니다. 처음 들으면 남을 가려내는 꼬리표처럼 들리고, 실제로 지금까지의 해설도 주로 주변 사람이 이런 이를 어떻게 대할지에 머물렀습니다. 그렇다면 당사자는 어떻게 되는가, 원전에는 그 답이 없을까요.

버린 덕은 강점인가, 약점인가

『동의수세보원』은 예를 버리면 비인, 의를 버리면 나인, 지를 버리면 박인, 인을 버리면 탐인이라고 정의합니다. 사상심학의 해설을 따르면 여기서 버린 덕은 타고난 강점이 아니라, 본래 약하게 타고나 마땅히 닦아야 할 덕입니다. 그렇다면 과제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는 일이 아니라 약한 쪽을 조금씩 닦는 일이 됩니다.

원전은 당사자에게 무엇을 말했는가

이제마의 초기 저작 『격치고』 독행편에 당사자를 향한 한 문단이 있습니다. 비루한 이의 마음은 삼가야 하고(謹), 박한 이의 담력은 한 걸음 물러서야 하며(退), 탐하는 이의 뜻은 느긋해야 하고(緩), 나약한 이의 뜻은 착실히 채워야 한다(實)는 것입니다. 삼가면 자기를 돕는 계책이 한결같아지고, 느긋하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뉘우침을 얻는다고 적었습니다.

네 방향은 "마음을 가라앉혀라" 하나로 줄일 수 없습니다. 삼가기, 물러서기, 늦추기는 무언가를 덜어 내는 쪽이고, 착실히 채우기는 반대로 실천을 더하는 쪽입니다. 겨냥하는 자리도 마음·담력·뜻·실행으로 다릅니다. 이 문단은 앞선 해설들에서 거의 인용되지 않았던 대목입니다.

원전에는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습니다. 억지로 기쁨을 지어내면 그 기쁨은 진정에서 나오지 못하고 도리어 다른 감정이 더 치우친다고 했습니다. 한 관계에서 생긴 감정을 엉뚱한 관계에 쏟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면담에서는 반대 감정을 억지로 만들게 하지 않고, 어떤 관계의 감정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먼저 살핍니다.

이 이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독행편 끝에서 이제마는 자기의 악을 익숙히 다스린 사람이라야 남의 악을 밝게 안다고 했고, 악을 미워하되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惡惡不可迫)고 적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비박탐나가 환자에게 붙일 진단명이 아니라 치료자가 먼저 자기를 점검하기 위한 관찰의 틀이라는 뜻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진료 기록에는 이 이름 대신 관찰한 행동과 그 상황만 남깁니다.

분명히 해 둘 것도 있습니다. 원전에 "비박탐나를 이렇게 치료한다"고 적은 문장은 없습니다. 네 방향을 치료 과제로 쓰자는 것은 원전의 재료로 세운 가설이고, 아직 시험된 적이 없습니다. 『격치고』는 스캔본에서 읽어 판독하지 못한 글자가 있고 번역도 필자의 것이라 원문 대조가 더 필요합니다. 경계성 성격장애에서 정신치료가 대조군보다 나았다는 메타분석이 있지만, 그 결과를 비박탐나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원전이 이런 상태를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적지 않았다는 점은 확인했습니다. 삼가라, 물러서라, 늦추라, 채우라. 몰아붙이지 않는 태도에서 교정이 시작된다는 것이 이제마가 남긴 방향입니다.

이 글은 진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몹시 힘들거나 위험한 생각이 든다면 혼자 견디지 마시고 바로 도움을 청하십시오.

— 참고: 소원재 「비박탐나에서 치료로」(2026), 『동의수세보원』 사단론·확충론, 이제마 『격치고』 권3 독행편, 강용혁 『四象心學』(2010), Cristea 등(JAMA Psychiatr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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