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談齋

질병을 본 사람과 사람을 본 사람

같은 불만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간 이야기다.

18세기 동아시아에서, 음양오행이라는 거대한 이론 체계에 대한 불만은 일본과 조선 양쪽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에도시대 일본의 요시마스 토도는 상한론이라는 고전에서 음(陰)·양(陽)·허(虛)·실(實)이라는 글자 자체를 지워버렸다. 조선 말기의 이제마는 영추·소문이라는 경전을 “황제를 가탁하여 사람을 현혹한 것"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둘 다 기존 체계가 사변적이라고 보았다.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같다. 갈라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토도는 만병일독설(萬病一毒說)이라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이론을 세웠다. 모든 병은 하나의 독에서 생긴다. 병의 종류가 다른 것은 원인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독이 몸의 다른 부위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약 역시 독이다. 독으로 독을 공격해서 독이 빠져나가면 몸이 낫는다.

이 이론 위에서 토도의 의학은 일사불란하게 작동한다. 독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으려면 환자의 배를 만지면 된다. 복진(腹診)이다. 배를 만져서 독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위치에 맞는 고대의 처방을 꺼내면 된다. 방증대응(方證對應) — 증상이 처방을 결정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있다. 이 체계에서 “환자가 누구인가"는 변수가 아니다. 같은 부위에 같은 양상의 독이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이든, 어떤 체질이든, 같은 처방이 나온다. 병을 본다. 사람은 보지 않는다.

이것은 비난이 아니다. 당시 에도의 의료 시장은 빠르게 상업화되고 있었다. 환자는 즉각적 효과를 원했고, 의사는 많은 환자를 봐야 했다. 토도가 상한론의 처방을 처방명 기준으로 재정리한 『류취방(類聚方)』은 출간 한 달 만에 만 부가 팔렸다. 증상에서 처방으로 가는 지름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질병의 기전을 깊이 이해하지 않아도 적절한 처방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매뉴얼이었다. 효율의 승리였다.


이제마는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그가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옛 의사들은 마음의 편착(偏着) — 감정의 치우침 — 이 병이 되는 것을 몰랐다. 바깥에서 오는 자극(풍한서습)과 먹고 마시는 것(비위수곡)이 병을 만드는 것만 알았다.

토도가 질병의 원인을 “독"이라는 물질적 존재 하나로 환원한 곳에서, 이제마는 질병의 원인을 “마음의 편착"이라는 방향으로 놓았다. 같은 자극이 주어져도, 그것이 병이 되는지 여부는 그 사람의 성정이 어떤 방향으로 치우쳐 있는가에 달려 있다. 토도의 의사가 “독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면, 이제마의 의사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다.

이제마는 사람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각 유형은 태어날 때부터 특정한 감정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이 방향성이 몸의 장부 기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슬픔(哀)의 기운은 곧바로 치솟고(直升), 분노(怒)의 기운은 비스듬히 치솟으며(橫升), 기쁨(喜)의 기운은 놓아 내리고(放降), 즐거움(樂)의 기운은 빠져 내린다(陷降). 이 네 방향의 기운이 어떤 비율로 타고났는가에 따라 체질이 결정되고, 강한 장부와 약한 장부가 형성되고, 결국 어떤 병에 취약한지가 결정된다.

같은 분노(怒)라도, 한 유형에게는 장부를 손상시키는 병인이 되지만, 다른 유형에게는 장부를 성장시키는 생리가 된다. 병과 건강의 경계는 감정의 과불급(過不及)에 의해 결정되며, 이 과불급은 사람마다 다르다.


여기서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 하나 떠오른다. 칼 융이다.

융은 1921년에 『심리유형』을 출판했다. 사고(Thinking)·감정(Feeling)·감각(Sensation)·직관(Intuition)이라는 네 가지 심리 기능을 제시하고, 한 사람에게 지배적인 기능(우월 기능)이 있으면 그 반대 기능(열등 기능)은 무의식 속에 미분화된 상태로 남는다고 보았다.

이 구조는 이제마의 것과 형식적으로 닮아 있다. 네 가지 범주, 대립 쌍의 존재, 강한 것이 있으면 약한 것이 수반된다는 동학. 이제마에서 한 장부가 크면(大) 그 반대 장부는 작다(小). 융에서 한 기능이 우월하면 그 반대 기능은 열등하다. 둘 다 개체를 네 범주로 나누고, 각 범주 안에서 강약의 대립이 작동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융의 유형론은 심리 안에 머문다. 유형이 신체적 질병을 직접 만든다는 주장은 융의 체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제마의 사상은 심리와 신체를 관통한다. 감정의 편착이 장부의 기능적 허실을 만들고, 이것이 구체적인 신체 질환으로 발현된다. 이제마의 한 표현을 빌리면, “칼로 장(臟)을 베는 것과 다름없다.” 감정과 신체의 연결이 은유가 아니라 기전(機轉)이라는 선언이다.

세 사람의 위치를 하나의 축 위에 놓으면 이렇게 된다:

토도 — 심리를 병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융 — 심리를 심리 안에서 독립적으로 다루었다. 이제마 — 심리와 신체를 하나의 기전으로 관통시켰다.

가장 급진적인 것은 이제마 쪽이다.


토도의 만병일독설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는 기존 의학의 음양오행론을 “사변적"이라고 비판했다. 관찰 가능한 것만 인정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모든 병이 단 하나의 독에서 비롯된다는 주장 자체가, 그가 비판한 이론들만큼 사변적이다. 누구도 “하나의 독"을 직접 관찰한 적이 없다.

전편에서 다룬 “원전 회귀의 구조적 위험"이 여기서도 반복된다. 소라이학의 방법론적 틀 — “후세의 것을 걷어내고 원전으로 돌아가라” — 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 날카로운 실증주의와 자기모순적 사변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하게 된 것이다. 틀이 주는 힘과 틀이 거는 제약이 동시에 작동한다.

토도의 아들인 남애(吉益南涯)는 이 문제를 가장 먼저 감지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만병일독설을 기혈수(氣血水) 이론으로 수정하여 임상 적용에 더 가깝게 만들었다. 하나의 독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아들이 먼저 인정한 셈이다.


토도의 의학이 가져온 것과 잃어버린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가져온 것: 진단의 단순화, 처방의 신속화, 실용적 매뉴얼의 탄생, 복진이라는 독자적 방법론. 이것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 — 상업화된 의료 시장, 빠른 치료에 대한 대중적 수요 — 에 대한 합리적 적응이었다.

잃어버린 것: 환자 개체성의 반영, 심리와 신체의 연관에 대한 탐구, 예방적 사유의 가능성. 독의 위치만 보는 의학에서, 그 독을 품고 있는 사람의 특성은 시야 밖으로 밀려났다.

이제마의 의학이 가져온 것과 치른 대가도 정리할 수 있다.

가져온 것: 사람을 병의 중심에 놓는 구조, 같은 증상에 대한 다른 대응, 감정 수양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치료. 이제마의 궁극적 이상 — “사람마다 자기 병을 안다” — 은 의학의 민주화이자 개체화 선언이다.

치른 대가: 유형 분류의 객관적 검증이 어렵다. 보편적 표준 처방을 세우기 힘들다. 효율적 대량 처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전편에서 우리는 토도를 “틀이 있는 자"로, 이제마를 “틀이 없는 자"로 불렀다. 이번에 더해지는 것은, 그 틀의 유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무엇을 불가능하게 했는가 하는 질문이다.

틀이 있는 자는 질병을 보았다. 날카롭게, 효율적으로, 재현 가능하게. 그러나 사람은 보지 못했다.

틀이 없는 자는 사람을 보았다. 넓게, 깊게, 개별적으로. 그러나 그 시선을 표준화하기는 어려웠다.

둘 다 옳고, 둘 다 대가를 치렀다. 이것이 18세기 동아시아에서 음양오행의 균열이 낳은 두 가지 의학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