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談齋

제국이 망하는 방식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회심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러셀에 따르면, 당시 로마 병사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도였다. 기독교도는 전체 인구에서는 소수였지만 단일 조직으로 뭉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세력이었다. 대항할 집단이 없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조직화된 집단의 지지 없이는 통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니케아 공의회를 직접 소집하여 교회의 내부 분열까지 정리했다. 교회의 통일된 조직을 국가 통치의 기반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동기였다.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든 뒤에는 의도와 결과가 역전된다. 테살로니카에서 7천 명을 학살한 황제가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에게 공개 참회를 강제당한 사건은, 종교적 권위가 세속 권력을 굴복시킨 상징적 장면이다.


기번은 기독교가 로마 시민의 전투적 덕성과 군사적 정신을 약화시켰다고 보았다. 내세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현세 국가 방위에 대한 헌신이 줄었다는 것이다.

러셀은 기번의 테제를 대체로 수용하되 두 가지를 보충한다.

하나는 국가 충성심의 약화이다. “신에 대한 의무가 국가에 대한 의무보다 크다"는 사상이 전파되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시민적 충성심이 변질되었다. 다른 하나는 지성인의 현실 외면이다. 야만족이 침입하는 시기에 히에로니무스,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지성인들이 재정과 군사 문제 대신 처녀성의 가치와 세례 안 받은 유아의 천벌을 설교하는 데 몰두했다. 러셀은 이를 두고 “로마의 파멸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고 썼다.


이 구도를 현재에 놓으면 묘한 대응이 보인다.

국가 충성심의 대체. 로마에서는 기독교가 그 역할을 했다. 지금은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국가 해체의 논리가 작동한다. 지성인의 현실 외면. 로마에서는 신학적 관념이었다. 지금은 정체성 정치와 문화전쟁이 그 자리에 있다. 조직화된 소수의 지배. 로마에서는 기독교라는 단일 압력 단체였다. 지금은 좌우로 분열된 다수의 소집단이 동시에 경쟁한다.

러셀의 관점에서 가장 위험한 징후는 두 번째, 지성인의 현실 외면이다. 제국이 망하는 것은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라, 내부 지성의 에너지가 현실이 아닌 관념으로 향할 때이다. 그 전환은 항상 도덕적으로 더 고상한 것의 외피를 쓰고 온다.

70년대 미국은 닉슨 이후 현실주의적 전환이 가능했다. 지금은 좌우 양극화로 현실주의적 합의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같은 구조가 반복되는 것인지, 아니면 매번 다른 결말이 가능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